대표칼럼2017-02-02T16:00:34+00:00

고난주간에 부쳐: 우리가 걷는 십자가의 길

작성자
director
작성일
2017-04-13 17:27
조회
683
고난주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받아 나선 길. 마지막 주간을 보내시던 예수님께 십자가는 무슨 의미였을까?

계속되는 억울함에 반응하지 않고 익숙해지는 것. 그렇지. 그분은 자기 백성들에 의해 존경과 높임을 받기보다 끊임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셨지. 급기야  '행악자'가 되어 이방인에게 넘겨지는 억울한 상황에 내던져지셨고... 요즘 처럼 자존심에 목을 매는 시대엔 더우기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제정신이냐? 왜 그래야 하는데...? 당장 되돌아오는 반응이다. 억울함이란 단어는 힘이 있는 자들의 사전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왜 힘이 있는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드리고도 창세 전의 그 영광을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직면하는 것.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늘보좌를 떠나셨고, 왕궁이 아닌 동굴에서 나셨고 가축의 먹이통에 누이셨다. 일찍부터 쫓겨야 했고 가난과 싸워야 했다. 모든 가르침과 표적 역시 너무도 쉽게 무시당하셨다.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제자들 마저 한 사람은 팔아버렸고, 다른 이들은 살 길을 찾아 도망가 버렸다. 그럼에도 하늘의 영광에서 배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땀이 피가 되어 떨어지는 기도에 담으셨다. 세상을 위한 극심한 십자가 고통 중에서도 버림받는 두려움을 토해내시던 그 모습은 힘든 시절 지나고 박수갈채와 영광스런 은퇴를 기다리는 요즘의 어떤 이들에게는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채찍질보다, 모욕보다 더한 고통 - 그토록 품고자 했던 이들이 바로 눈앞에서 자신이 아닌 바라바를 선택하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도 포함된다. 자신들의 영원한 죄악을 도말하시고 죽음의 굴레에서 풀어주실 분을 버리고 강도를 선택하는 이 어리석음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어야 하셨다. 무슨 고차 방정식이길래 이런 해답을 내놓는단 말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나라의 샬롬을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현재의 안위는 가장 큰 기준일 수 있으리라. 바라바? 나름 그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었지만 그 속에는 그 정도로는 현재의 안위가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정치종교 지도자들의 속셈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고통과 아픔은 헛된 것이었단 말인가? 자신의 모든 능력을 포기한 채 무기력함에 스스로를 맡겨야 하는 것- 정녕 이것이 십자가의 의미란 말인가?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믿으리라" 무심한 이 조롱에도 끝까지 그 길을 버티는 것 역시 그분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였다. 그곳에 있던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로마병정들은 차치하고라도 가슴을 치며 눈물을 쏟던 여인들, 가슴에 칼을 꽂는 아픔을 견뎌야 했던 어머니, 비겁함을 감추려 멀리서 바라보던 제자들까지... 그들의 기대는 한결 같았다. '제발 내려오세요. 내려와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주세요. 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시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해 주세요.' 왜 모르겠는가? 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떠나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에서 견뎌야 했던 육체적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 유혹이 달콤한 속삭임으로 다가왔을 터인데... 하지만 이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실 수는 있었을지 모르나 우리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참으며 바라는 소망은 헛된 뜬구름에 불과할 것이다.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긴 것 같으나 명백한 하나님의 패배. 사탄의 승리. 하지만, 고통 속에 흘린 기운 한 자락, 마지막 호흡 한 올까지 그분은 십자가를 내려오기 위해 쓰지 않으시고 그 고통과 치욕의 자리-십자가를 지키셨다.

말못할 고통 한 두 개는 가슴에 품고 가는 것-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이 길에 마음에 품고 가슴 아리는 아픔을 홀로 삭이시다 마지막 호흡 한 자락 남은 순간 못다한 효도가 마음에 걸리셨던 것일까? 누구나 이 아픔 하나쯤은 가슴에 있는 법이지. "어머니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 못난 자식 위해 백년을 하루 같이 손발에 금이 가고 잔주름 굵어지신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편히 한 번 모시리다" 눈물로 읊조리던 노래가락이 떠오른다. 누군들 없으랴, 이런 아픔이...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 멀리서 편찮아 누우신 병상을 못내 그리워 베갯잇을 적시는 밤. 아이들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하지 못하는 아픔에 점차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안타까움까지...

고난주간을 보내며 나에게 묻는다. 예수님이 걸었던 그 십자가의 길, 나도 그 길을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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