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칼럼2018-09-20T15:41:2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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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칼럼

Piece by Piece Toward Finishing Well

작성자
director
작성일
2018-10-08 12:24
조회
19
'어떻게 하면 잘 마칠 수 있을까? finishing well'
요즘 선교사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표현 혹은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현재의 사역에서부터 전체 삶을 포함하는 주제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 즉 '리더'의 삶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리더란 다른 사람을 거느리는 위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위치에서건 전후좌우, 위 아래 할 것 없이 주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은 리더로서 부름받은 것이다. 이는 특히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고 그 생명력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그렇다. 영향력을 지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삶이건 사역이건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의 마지막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모든 삶의 순간들, 사역들과 관계들은 이렇게 마지막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이것들은 각자가 어떻게 마지막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복잡한 세상에서 언약을 이루어가는 우리에게 좋은 거울이 된다. 그 중에서 특히 지도자군을 형성했던 사람들이 그러하다. 주변 나라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미쳐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도 쉽게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보다 동화되어 가는 길을 택했다. 그들을 계도해야 할 의무를 지닌 지도자들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성경의 역사는 그리 밝은 기록을 전해 주지 않는다. 지도자들 역시 시류에 편승하거나 일반 백성들과 타협하는 길을 걸었다.
편승하거나 타협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법을 세우려 했던 요시야는 그 마지막이 수많은 사람들의 길과 달랐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극한의 슬픔으로 그를 잃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여호아하스라고도 불렸던 그의 아들 살룸은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3개월 만에 이집트에 사로잡혀 가는 불행을 겪었다. 약속의 땅이 아닌 원수의 땅 이집트에서 그는 목숨을 연명해 가긴 했지만 그건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에서 완전히 배제된 그는 결국 적국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그의 마지막이다.
그의 형제 여호야김은 당대의 사람들의 이목을 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 법망을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았고,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프로젝트들을 이뤄냈다. 어려운 경제사정 속에서 인맥과 지식의 산물을 통해 장식된 그 프로젝트들은 당대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 가난한 자들도 함께 웃는 정의와 공의 대신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피흘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은 왜일까? 가난한 이들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함께 샬롬의 일면을 누리는 '특별한 소유됨(출19:5)'의 축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그의 죽음. 짐승처럼 묻혀 버린 장례식.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의 마지막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사람들의 주목을 끌만한 업적 조차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져 버린 어떤 이들의 마지막. 자신의 길과 달랐지만 존경하고 아쉬워하며, 떠남을 안타까워 했던 또 다른 마지막. 오늘도 영향을 끼치도록 부름 받은 삶. 아침부터 이어지는 만남과 만남, 바쁜 일과, 행사들과 업무들.... 그리고 하나님과의 시간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지금 어떤 마지막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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